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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령면

효령면

현재의 효령면(孝令面)은 신라 초(490년경)에는 모혜현(芼兮縣)이었지만 신라 경덕왕 16년(757)에 효령현(孝靈縣)으로 개명되었으며 고려 공양왕 2년(1390)에 군위현(軍威縣)으로 예속되었다.

한편 孝靈이란 지명은 9세기경부터 孝寧(효령)으로 쓰여 오다가 15세기 孝寧大君(효령대군, 1396~1486)의 함자를 피휘하여 孝令(효령)으로 글자가 바뀌었다. 시대에 따라 효령의 령이 靈→寧→令으로 변하여 간 것이다.

처음 지명 孝靈(효령)은 孝(효)에 정령(精靈 ; animism)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 지명의 유래는 마을사람들이 김유신장군을 어버이처럼 섬긴다는 의미에서 경덕왕이 만든 이름이다. 현재 쓰이고 있는 孝令(효령)이란 지명은 백성들의 마음씨가 착하고 아름답다는 뜻으로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한다.
옛 효령면의 치소(관아)는 현재의 효령면 장기3리 고지바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건물도 모두 없어졌다. 옛 기록에 따르면 동헌(東軒)을 중심으로 동남쪽 70여 걸음 되는 곳에 임창(任倉)이 있었고 동북쪽 100여 걸음 되는 곳에 옥사(獄舍)가 있었으며 또 북쪽 3리쯤 되는 현재의 장군1리(나실)에 향교가 있었다고 한다.

지금 쓰이고 있는 효령(孝令)라는 지명은 박약지(朴約之)가 17세 때 부친상을, 그리고 모친상을 당하자 여묘(廬墓)에 각각 3년간 묘(墓)를 지키며 효(孝)를 정성껏 하던 중, 어느 날 들불이 일어나 여묘까지 번지려 하자 약지가 소리쳐 울었더니 불이 저절로 꺼졌다 한다.이 사실을 안 주위 사람들이 그 효성에 감동하여 “孝” 자를 따서 孝令이라 친하였다고 함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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